전주이씨 양녕대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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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용장공파 "3백년간 묘지 걱정 덜었죠"
▶ 게 재 일 : 2001년 08월 25일 27面
▶ 글 쓴 이 : 백성호

전주이씨 용장공파 "3백년간 묘지 걱정 덜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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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손(王孫)이 어떻게 화장(火葬)을 하느냐고 난리였죠. 문중 어르신들을 설득하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

지난 23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합수리의 문중묘지를 찾은 전주 이씨 용장공파 종친회장 이부종(李斧鍾.69.서울 강남구 역삼동)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경기도 성남의 1만5천평 선산이 만장(滿場)상태가 되자 지난 6월 1백30여기의 조상 유골을 화장, 2억2천만원을 들여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중 납골묘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평판식 납골묘에 계단식을 가미한 이 문중묘원의 면적은 고작 3백평. 하지만 李회장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문중묘를 모두 수용하고도 후손들이 3백년 동안 사용할 공간이 마련됐다" 고 설명했다. 1기당 10평 이상을 차지하는 봉분형 매장묘지에 비해 화장함을 묻고 봉분없이 비석만 세우는 납골묘는 1기당 0.2평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李씨 문중이 납골묘지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핏줄로 유교적 가풍이 워낙 강한 데다 문중 어른들은 `화장은 악상(惡喪)` 이라는 생각을 쉽게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친회 이인종(李仁鍾.67.성남시 수정구 태평1동)씨는 "매년 총회에 납골묘 안건을 제출했지만 거절당하기 10년째였다" 며 "솔선수범을 보이기 위해 종친회 간부들은 자신들의 납골묘를 미리 만들고 비석에 이름까지 새겨넣고서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고 털어놨다.

반대를 거듭하던 문중 어른들도 함께 모신 납골묘를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시제를 올리기 위해 2~3일에 걸쳐 여러 산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진 데다 봉분이 없어 벌초도 간편해졌다.

종친회 李회장은 "후손들이 더 자주 조상묘를 찾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명당" 이라며 "결과적으로 문중이 앞장서 전 국토가 묘지로 변해가는 것을 막는데 일조해 보람을 느낀다" 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2002-01-05 에 작성된 스크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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